2013년 7월 23일 화요일

한국 흡연자 무풍지대!!!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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공식적으론 완전 금연구역, 현실은 제지·단속 거의 없어… 아예 재떨이 비치해 놓기도

"안 그래도 열 받는데 너까지 왜 그래? 속상해서 담배 한 대 피우는데 왜, 잡아가려고?"

지난달 말 의무경찰 A씨는 서울 혜화경찰서 현관 바로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한 남성에게 "여기는 금연구역"이라고 말했다가 온갖 욕설을 들었다.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고 나온 이 남성은 A씨에게 분풀이를 한 것이다. 된통 욕을 먹은 A씨는 그 이후 흡연자들을 건드린 적이 없다고 했다. 그는 "경찰서 직원들도 흡연자들을 별로 제지하지 않고 구청이나 보건소 단속도 본 적이 없다"고 말했다.

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2월 8일 '금연법'을 통해 전국의 모든 공공기관과 의료기관의 건물·정원·주차장 등 시설 전체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했지만, 경찰서·검찰청·법원 등 사법 절차와 관련된 기관과 대형 병원 등 뭔가 '걱정거리'가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는 사실상 '흡연구역'이 돼 버렸다.

본지가 22일 서울북부지법·북부지검, 서울 성북경찰서 등을 찾았을 때에도 건물 주변의 거의 모든 공터에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. 재떨이와 담배꽁초 수거함도 곳곳에 버젓이 놓여 있었다. 담배 피우는 걸 제지하는 직원은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.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의 환자 산책로는 금연구역이지만 환자뿐만 아니라 환자 가족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야외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.

문제는 원칙적으로 공공기관 직원들이 흡연자를 제지할 권한이 없다는 점이다. 흡연 단속은 보건소 담당 직원들만 할 수 있게 돼 있다. 과거엔 흡연을 단속할 수 있었던 경찰은 지난 3월 경범죄 처벌법이 개정되면서 단속 권한이 모두 지자체(보건소)로 넘어갔다. 병원 직원이나 법원·검찰 공무원은 관할 보건소에 민원을 넣는 방식으로 흡연자를 막아야 한다. 하지만 보건소 직원이 출동할 때까지 그 흡연자가 기다리고 있을 리 만무하다.

공공기관 직원들은 "단속 권한도 문제지만 '감정' 문제가 더 크다"고 입을 모았다. 괜히 건드렸다가 욕만 먹기 때문에 흡연을 막지 못한다는 것이다. 서울 남부지법의 한 직원은 "곧 법정 구속될 수도 있는 사람에게 '담배는 저쪽에 가서 피우세요'라고 말했다가는 뺨 맞기 십상"이라고 했고, 서울대병원 홍보팀 직원은 "정신적 고통 때문에 담배를 피우는 환자나 그 가족을 제지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"고 했다.

복지부와 관할 구청·보건소가 적극적으로 단속에 나서지 않기 때문에 공공기관 금연 실태가 엉망이라는 지적도 있다.

정부는 계도 기간을 거쳐 지난 1일부터 150㎡ 이상 음식점과 공공기관 등에서의 흡연을 본격적으로 단속하기 시작했다. 하지만 금연법 시행 약 8개월, 본격 단속 20여일 동안 서울 시내 경찰서·검찰청·법원에서 이뤄진 단속은 거의 없었다.

지방법원과 지방검찰청이 있는 서울 광진구·마포구·도봉구의 전체 흡연 과태료 부과 건수는 1~2건에 불과했고, 공공기관 내 단속 건수는 0건이었다. 올해 1만637건의 흡연 과태료를 부과한 서울 서초구는 공공기관 적발 건수가 23건이었지만 이는 모두 서초구청 내에서 적발한 것이었다.

서울 종로보건소의 한 직원은 "흡연 단속을 담당하는 인력이 2명밖에 안 돼 음식점·술집 돌아다니는 것도 버겁다"며 "그나마 공공기관이나 병원은 일반 건물에 비해 금연이 잘 이뤄지고 있어서 자주 단속하지 않는 것"이라고 해명했다. 복지부 관계자는 "지금까지는 실내 흡연 단속에 집중했지만 앞으로는 야외 흡연 단속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홍보도 확대할 예정"이라고 말했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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